‘꿈의학교’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오늘 강연 전에 많은 사전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질문은 제 강연 내용에 답이 있고, 일부 질문은 강연 후 답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주신 질문 가운데 몇 개의 질문에 대해서는 글로 답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을 포함한 많은 청소년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 입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10대에 무엇을 하며 사셨나요?
  •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힘든 일이 있었나요?
  • 지금 제 나이 때에는(16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 지금 나이(14)부터 준비를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 저는 작년부터 독학사 컴퓨터 과학과 공부를 시작하여 내년 학사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올해까지 독학사만을 생각하며 크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다가 내년에 독학사가 끝난다는 생각을 하니 이후에 미래가 갑자기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다 보니 정보도 적고 졸업 이후의 삶을 설계하기가 두렵기도 하고 힘든 것 같습니다. 42서울, 연구소 다양한 고민을 해봤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망설임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위 질문 모두 자기 자신의 현재에 비추어 뭔가 걱정되는 미래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에 관한 것입니다. 저의 10대를 돌아볼 때,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에 주변에서 환영받지 못했지만 저한테는 재미있던 한두 가지 빼고는 보람찬 것이 별로 없는, 크게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살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다양하고 변해가도, 어떤 나이 대에 하는 고민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수준일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늘 솟아나는 창의력을 가진 나, 어떤 배움에도 지치지 않는 학습 관성을 가진 나, 나의 선택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경제적 풍요로움, 나를 믿고 내 의견을 지지하며 내 의사를 완전히 존중해주는 가족,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아닌 나 자신을 보고 이해하는 친구, 내가 잘하고 재미있는 부분에 대한 평가와 지원이 있는 학교, 진정어린 격려와 건전한 비판 그리고 호기심 어린 질문과 친절한 답이 있는 온라인/오프라인 커뮤니티, 안정된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하는 사회 등과 같은 우호적인 모든 환경이 나를 위해 준비되고, 내가 뭔가 결심만하면 다 나서서 도와주려고 기다린 때는 역사상, 누구에게도 없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그걸 모두 가졌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런 친구도 단언컨대 세상에 없습니다.

 

어쩌면, 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앞의 항목들은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닌 ‘얼마나?‘의 문제입니다. 항목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각 항목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가지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문제들은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에서 기인하는 상대적인 문제들입니다. 또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어떤 항목의 어떤 가지에서의 결핍이 다른 항목들의 나쁜 가지를 더 드러나게 하여, 나의 시야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세상은 없습니다. 제게도 세상은 당연히 그랬습니다. 힘들지만 내 선택에 따라 재미있는 세상이 있을 뿐이죠.

 

저는 10대에 소위 말하는 땜질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LED가 반짝이는 간단한 장치, 조금은 복잡한 라디오도 만들었죠. 이거저거 너무 재미있어서 대입 때문에 공부를 좀 해야 했던 고3 기간을 제외하고는 청계천/세운상가의 전자부품가게에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가곤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지금은 인기가 떨어진 취미인 아마추어무선(HAM)을 취미로 하면서 무전기도 만들고, 전공인 컴퓨터와 컴퓨터 관련 장치들을 직접 만들고, 회사들과 그런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활동들이 나중에 직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부모님이 원하는 저의 진로는 많이 달랐습니다. 당연히 문과에 가서 판사를 해야 했고, 제가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한 뒤에는 또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컴퓨터/소프트웨어가 지배하던 세상이 아니었던지라, 땜질만 하다가는 동네에서 라디오만 고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걱정은 일리가 있어보였고, 그 걱정도 제 마음 한편에는 가볍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로에 관한 저의 선택은 인제나 부모님의 희망에 반하는 것이었고, 뭔가 심각한 투쟁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제 나이가 예순이 다되어 가는데도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은 ‘그때 네가 법대를 갔어야 해, 아니면 의대라도 갔어야 해’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전 압니다. 제가 없는 곳에서는 두 분 모두 최소한, ’우리 민석이가 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어‘라는 안도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우리 민석이가 이런 일을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하고 주변 분들에게 자랑하고 계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그리고 온 세상의 자랑거리임이 틀림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해도, 취미로 지금 하는 일을 하면 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내가 재미있었던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고 다른 모든 환경이 내 선택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았던 탓일 겁니다.

 

어쨌거나, 제게는 처음부터 공돌이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20대까지도 저와는 잘 맞지 않았던 문학, 역사, 철학 책보다는 제 관심사가 담긴 과학 잡지, 전자 회로와 관련된 책만 읽었습니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재미있는 것만 골라하기도 바쁜데 재미없는 것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서른쯤 돼서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드디어 소설과 쉬운 철학책이 조금은 이해도 되고, 크게 재미있지는 않아도 집중이 되는 책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인문학 책을 잘 읽는 편이 아니지만, 뭐든지 시기가 있나 보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되기 위해, 남들처럼 하기 위해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저를 걱정하던 저의 10대 때와 지금 사이에 결정적으로 다른 상황이 있다면, 제 부모 세대에는 물리적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을 수도 있고 실제 그런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꼭 굶는 것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보장은 우리에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보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기본소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시험이 제일 싫었습니다. 재미없는 것을 외우고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등수가 정해지고, 내가 재미없어 하는 것을 공부해서 얻은 성적으로 나를 평가받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가면 드디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줄 알았습니다. 대학에서도 졸업을 하려면 남들이 정한 필수과목이 있고, 역시 인문학 과목도 들어야 하고, 내게는 불필요한 수준의 어려운 수학도 배워야 했고 시험도 봐야했습니다. 대학을 지나 대학원과 사회에 나가서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시험, 평가, 면접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항목들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내가 최고책임자로 운영하고 있는 지금의 일도 저보다 더 경험이 많거나, 저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자주 평가를 받으면서 진행됩니다. 아무리 좋고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해도 평가를 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앞에 있는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고, 동의까지는 아니라도 그들을 이해시켜는 과정을 거쳐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도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를 고객 한명 한명에게 설명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삶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틀에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 과정을 한편으론 즐겨야 하고, 어떤 것은 그냥 해야 할 일로서 해치우고, 어떤 것은 나중에 있을지 모르는 보람을 기대하면서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재능과 재미를 말합니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직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아직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운이 좋아 일찍 발견할 수도 이지만, 더 늦게 발견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은 아인슈타인이나 손흥민 같은 극히 예외적인 천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천재성을 포함한다 해도 재능이 저절로 확인되고 발현되지는 않습니다. 재미도 다르지 않습니다. 재능이나 재미는 많은 실패를 이겨내면서 얻어낸 성과를 둘러보면서 느끼게 되는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호기심이 끌리는 영역에 몰입을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젊을 때는 호기심도 큽니다. 많은 것들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틀린 선택은 없습니다. 다른 선택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 길엔 좋은 면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에도 그 길의 끝에서 돌아보면 크던 작던 성과와 경험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같은 분야의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라는 선택으로 나를 이끈다면 그것이 재미입니다. 그렇게 경험과 성과가 쌓이면 남들이 보기에 재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을 위한 고민에 시간을 쓰는 것, 한 쪽을 선택한 뒤에 다른 쪽의 포기를 후회하는 것은 삶의 좋은 작전이 아닙니다. 조금 더 끌리는 쪽을 빠르게 선택을 해서 열심히 해보고, 재미가 없으면 또 다른 쪽도 선택해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꿈의학교‘는 여러분에게 다른 환경의 젊은이들보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세상은, 내 학벌이나 배경을 보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 역량을 봅니다. 내가 어떻게 배우는지를 봅니다. 내가 어떤 것에 재미를 느끼고, 어떤 분야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지 봅니다. 진도를 나가고 시험을 봐서 얻은 학위와 자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역량과 그 역량을 얻게 된 경험 속에서 뭘 어떻게 배웠는지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지식도 중요합니다. 지식이 중요한 이유는 지식이란 그 분야 선수들이 소통하는 언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경험은 아주 조그만 일이라도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경험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아닌 고객이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유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피드백을 받고 개선하면서,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을 배우고, 지식을 체화하고, 가끔 나를 뒤돌아보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야기 합니다. 대개 나는 뭐가 되겠다는 꿈입니다. 그런 명사형 꿈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 뭔가가 되기 전까지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가장 보람차게 사는 방법의 가장 첫 번째는 꿈을 동사형으로 가지는 것입니다. ‘기자’가 꿈이 아니라 소식을 잘 ‘전하는’ 것이 꿈이어야 하고 ‘사진작가’가 꿈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이 꿈이어야 하고, ‘선생님’이 아닌 ‘가르치는’ 것이 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사형의 꿈은 지금부터 성공을 하는 방법입니다. 기자가 아니어도, 사진작가가 아니어도, 선생님이 아니어도 소식을 전하고, 사진을 찍고, 내가 아는 것을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면서, 그 과정을 즐기면서, 또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뭔가를 공유하면서, 배우는 삶을 바로 살 수 있는 거죠. 

 

아직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계는 천천히 갑니다. 누가 봐도 지구가 몇 년 뒤에 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몰입을 해도, 그 선택이 나와 맞지 않아 되돌아와 다른 길을 다시 선택하더라도, 지금부터 뭔가를 배워도 늦지 않습니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를 허락받을 수 있다면 선택을 잠시 미루고 주변을 많이 돌아보며 가슴 뛰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글에 있는 단어들을 거창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나의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겐 걱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소소한 재미부터 찾는 것이 답입니다. 세상은 충분히 넓고,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2021년 11월 24일

 

이 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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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l1i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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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현수 2021.12.05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