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하는 이야기

단독주택에 관한 생각

hl1itj 2022. 5. 8. 12:51

요즘 전원 (또는 단독) 주택을 예쁘게 지은 포스팅을 종종 본다. 하나도 안 부럽다. 오히려 걱정된다. 무려 70년대에 청운의 꿈을 품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감탄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꽤 현대적인 단독주택을 지어 나도 20년 정도를 살고, 이후에 두 분은 10여 년 더 사시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누군가 100% 관리를 해주고 그 (클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할 수도 있지 않는다면, 결론적으로 평생 주택으로서 단독 주택은 아니다. 힘좋고 시간 많을 때 (이런 게 많은 사람들에겐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 때 집으로는 OK다. 그래서 떠날 계획을 미리 잘 잡아두어야 한다. 질질 끌다가 개고생 한다. 아파트가 답이다. 같은 수준의 아파트가 훨씬 비싼 이유가 다 있다.

그래도 혹시 단독 주택을 원하신다면..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들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겠다.

1. 잔디.. 잊어버리자. 창문 열면 푸른 초원,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집이 수천평 되면 모를까.. 아니다. 잔디는 잘 죽거나, 일단 자리 잡아 잘 자라기 시작하면 진짜 너무 잘 자란다. 잔디의 친구 잡초는 더 잘 자란다. 집이 엄청 넓으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동 기계도 쓰고, 더 넓으면 양 두 마리 정도 키워주면 되겠지만, 늘 딱 애매한 작은 크기라 (잔디 깎는 가위를 이용하는) 수동으로 해야 하는데, 첫날 딱 해보고는 '멋지고 할 만한데?'라고 생각이 들뿐 두세 번 지나면 잔디가 미워진다. 힘들고 며칠 뒤면 깎은 표도 안 난다. :: 그래서 결론 :: 잔디 대신 자갈을 깔자. 그 둥근 자갈 말고 고동색 작은 돌 그런 거 정도..

잔디.. 관리 불가능


2. 텃밭.. 잊어버리자. 연둣빛 키 작은 채소들, 아담하게 자라서 고기 구워 먹을 때 쌈 채소로 쓰고 샐러드 만들어 먹고, 허브 올리고..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먹을만한 거 만들려면 완전 신경 많이 써야 한다. 심어서 가끔 물 주면 될 것 같지? 절대 저 혼자 안 자란다. 벌레도 짱 많이 생긴다. 내가 먹기 전에 벌레가 다 먹고 먹을만한 거 건지기 힘들다. 혹시 잘되도 문제다. 너무 많이 생기는데 처음엔 옆집 순이네 영철이네 나누지만, 나중에 나눠주기도 힘들다. :: 그래서 결론 :: 채소는 사 먹자. 혹시 정말로 원하신다면 아담한 연둣빛.. 그런 건 잊어버리자. 깻잎 정도 좋다. 이쁘지 않지만 내버려두어도 그럭저럭 자라고, 실패해도 아쉽지 않다. 정말 최소한의 관리로 가능하다. 그리고 대파 몇 뿌리 꽂아두는 정도.. 잘 생각해보자, 우리에겐 텃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큰 상자 하나면 된다.

텃밭.. 이럴 것 같지?


3. 과실수.. 잊어버리자. 마당에 사과, 감, 모과 열리면 일단 엄청 있어 보이고, 그거 따서 먹고 나눠주고 차도 만들고 쨈도 만들고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이미 큰 나무를 사다 심으면 한두해 뒤에 결과가 있지만, 작은 나무가 자라 쓸만하게 열릴 때까지는 정말 영겁의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과일은 한철이라는 거다. 한 철하면 가을 내내 이런 거 생각하겠지만, 진짜 과일의 한 철은 사실 한두 주이고, 선선해지고 눈이 쌓이는 겨울까지 그 과실 수의 이파리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기~~인 한철이다. 감 하나에 이파리 하나 이러면 좋겠지만, 감 하나에 이파리가 1kg는 된다. 누군가 쓸어야 한다. 낙엽? 그건 적당히 있다가 남들이 쓸어줄 때 '낙엽'이고 내가 쓸어야 하면 그냥 쓰레기다. :: 그래서 결론 :: 과일은 사 먹자. 혹시 정말로 나무를 원하신다면 이파리 잘 안 떨어지고 1년에 한 번 정도 손봐줘도 티 잘 안나는 침엽수, 키 작은 정원수, 죽어도 안 죽은척하고 그대로인 선인장 그 정도가 답이다.

과실수.. 과일은 한철이다.


4. 계단 있는 2층 집.. 잊어버리자. 무슨 저택의 휘감아 올라가는 계단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무슨 궁이나 성이라면 모를까.. 아니다. 집안이 예쁘려면 우아한 모양의 계단이 한 몫하는 건 맞는데, 지하철에서도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 타는 주제에 계단? 오르내리기 생각보다 번거롭다. 2층을 창고/다락으로만 이용해서 1년에 한두 번 올라갈 때 사용하는 거 아니면 계단이 있는 2층 집은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고도 많이 난다. 뭔가 들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어쩌다 미끄러워서. 어른 아이 할 거 없다. 보통은 계단을 넓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짐 옮기기도 짱 불편하다. :: 그래서 결론 :: 집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둘 거 아니면 2층 집 잊어버리고 집은 단층으로 짓는 거다.

계단.. 이런게 아니라면



5. 멋진 테라스.. 잊어버리자. 만들기는 해도 '멋진' 이 장면은 기대하지 말자. 우리나라에 정말 외딴곳 아니면 자연만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한 여름 아니고, 늦가을부터 이른 봄 아니고, .. 비오는날 아니고, 테라스를 이용할 수 있는 날씨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테라스에서 바베큐 파티.. 음. 정말 외딴 곳 아니면 완전 민폐다. 잘해야 일년에 한두번 이다. 그냥 야외 테이블 있는 고깃집 가자. 집이 완전 넓으면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테라스에 잘 안 쓰는 짐이 놓이기 시작한다. '안' 예쁘다. 테라스 바닥도 심한 관리 대상이다. :: 그래서 결론 :: 큰 테라스 비추다.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만들자. 정말로.. 경치가 그나마 좋으면 아주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놓을 정도 자리만 만들자.

테라스.. 이런데가 있을리가.


6. 포근한 우리 집.. 이건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단열과 방수, 소음 차단 등은 건축의 기본인데, 이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재료도 재료지만 시공 과정이 더 문제다. 100% 정직원만으로 설계-시공까지 하는 회사가 없다. 다 하청에 재하청이고 사장님도 처음 보는 일용직들 일하러 오는 경우, 말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설계야 다 제대로 겠지만, 매의 눈으로 시공의 에브리 디테일을 감독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작업하는 분이 전문적 훈련을 받은 뒤 실제 시공한 경험도 많아야 하고, 공사 당일 기분도 좋아야 하고, 공사 기간 동안 날씨도 좋아야 하고, 재료도 좋은 걸 선택해야 하지만 모든 재료가 불량 없이 일정에 맞춰 들어와야 하고, 잘못 시공된 흔적이 있을 때 거침없이 재시공할 마인드들을 에브리바디 갖춰야 하고, 끝도 없다. 또 윗집 아랫집이 이미 난방을 하고 있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 주택은 모든 구석을 내가 덥혀야 한다. 모든 구석.. 상시 난방하기 아까운 모든 벽 닿은 창고, 펜트리, 보조 화장실, 외부와 연결되는 애매한 공간들.. 한 겨울엔 다 얼음장 된다. :: 그래서 결론 :: 집 짓는 거 아니다.

포근함.. 쉽지 않다.


7. 기타 등등.. 잘 준비된 주택 단지 (즉 수십 채의 단독 주택을 한꺼번에 짓고, 기본적인 인프라 관리도 공동으로 하는 곳) 말고 완전 단독 주택이라면... 비 많이 올 때, 눈 많이 내릴 때, 태풍 불 때, 한파가 몰아칠 때 이거 장난 아니다. 날 좋고 우아한 분위기에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 넘치고, 새고, 미끄러지고, 넘어가고, 얼고, 터진다. 또 평생 갈 것 같은 많은 물건들이 생각보다 빨리 망가진다. 그런데 예쁜 집 짓느라 규격품이 아닌 사제, 특이한, 주문형, 귀한, 외국산 물건들을 쓰는 경우도 많고, 망가진 물건들에 대한 접근성/작업성이 꽝인 경우가 많아서 수리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또 아파트면 누군가 또는 공동으로 (즉, 관리비로) 해결되는 많은 것들이 내 일로 돌아온다. 요즘엔 좀 쉬워진 것들이 많지만, 쓰레기, 정화조, 냉난방 방법, 집과 외부의 경계 (담, 문), 방범, 주차, 택배, 인터넷, 전화, 전기, TV 안테나, 이런 모든 것이 '나 만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다시 한번 결론 : 집 짓는 거 아니다. 아파트가 답이다. 우리 부모님도 30년 이상 사시던 단독주택을 포기하고 아파트로 옮기신 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하셨다. 어른 말씀 틀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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