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히 대학의 소프트웨어 학부에 진학을 할 목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입시준비생들을 위한 안내입니다. 다른 전공에 지원한다고 해도 도움이 되기는 할 겁니다. 자기소개서는 꽤 중요한 것 같아서 무려 '존댓말'로 썼습니다. (이 글을 최초로 쓴 시점은 2019년 입시의 수시 원서접수가 훨씬 지난 시점인 2018년 12월입니다.)
- 먼저 주의 사항 - 이 자기소개서 쓰는 법은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제가 속한 대학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으며, 이 방법대로 쓴다고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어떠한 보장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소개서는 지원한 학교, 전공의 인재상, 그리고 해당 전형의 인재상에 따라 평가되며, 또 자기소개서를 읽고 평가하는 사람마다 관점이 조금은 다를 수 있으므로 같은 자기소개서가 모든 평가자에게 똑같은 느낌으로 읽히지는 않습니다. 또 자기소개서는 '자기'를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잘 드러난 글이어야 합니다. 그 '자기'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어떤 때는 문체, 양식, 글의 전개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자기소개서 작성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은 매우 깁니다. 예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전공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분들은 길더라도 다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자기소개서 내용에 관한 것만 보시길 원하시면 1번 항목부터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주변에 공유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은 특히 소프트웨어 전공으로의 입시와 관련한 자기소개서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서를 쓰는 법은 제가 예전에 쓴 [자기소개서 쓰는 법]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소개서 형식은?
0.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평가되는가?
1. 자기소개서에서 이야기하는 '배우고 느낀 점'의 의미
2. 자기소개서에서 보고 싶은 것
3. 자기소개서에서 안 보고 싶은 것
4. 학교에서 담당해줘야 하는 것
5. 면접에 가면
모든 이야기에 앞서 자기소개서는 자기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고. 그래서 예제를 보지 말고 쓰고, 수정하고 개정하고 리뷰받고, 다 버리고 다시 쓰고 이런 작업을 100번은 해야 정말 내가 나옵니다. 또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선생님이나 주변 분들은 당연히 리뷰를 해주시겠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리뷰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몇 번을 보고, 고치고, 바꾸고 해야한다고요? 아마도 100번 이상입니다. 우리나라 입시 현실에서 이 시간은 연습문제 몇개 더 풀어보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며, 당연히 투자할만 합니다.
-1. 자기소개서 형식은?
2019년 입시 현재, 지원하는 전공과 상관 없이 자기소개서는 3개의 모든 대학 공통 문항과 1개의 대학 자율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대학 자율 문항은 대학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에 의거하여 다르게 정해집니다. 다음 그림은 국민대학교 입시 안내 자료에 있는 자기소개서 구성 내용입니다.
'1. 학업에 기울인 노력', '2. 의미를 둔 교내활동', '3. 배려-나눔-협력 사례'는 모든 대학 공통이고, 국민대학교의 경우 '4. 지원동기와 진로탐색 도전 경험'이 자율 문항입니다. 다른 대학의 자율 문항도 거의 유사한 전공 선택과 그에 따른 활동을 묻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기소개서의 글자수 제한은 각 문항당 띄어쓰기(즉 공백) 포함, 1,000자 (1,3번), 1,500자 (2번)이고 4번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개 1,000자~1,500자 정도입니다. 국민대학교는 1,000자 입니다. 영어 알파벳 하나, 문장 부호, 한글, 공백, 줄바꿈 모두 한 자로 처리됩니다. 인터넷에서 '글자수 세기'를 검색하면 글자수를 세어 주는 사이트가 많이 있습니다.
0.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평가되는가?
원서와 함께 제출된 자기소개서는 컴퓨터가 가장 먼저 읽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이라는 곳에서 총괄 관리하는데, 그 대교협의 [유사도 검색] 시스템에서 그해 모든 대학의 입시에 제출된 자기소개서는 당해년도를 포함한 최근 수 년간 모든 대학 입시에 제출된 다른 자기소개서와 상호 비교되며, 그리고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문서들과도 상호 비교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육부의 공식 블로그 [대입 '자기소개서 유사도 검사 시스템'이란?]에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표절이 확인되면, 당연히 대학에 그 사실이 알려지고, 대개 0점 처리됩니다. (학교마다 표절 정도에 대한 기준이 다르겠지만, 기술적으로는 서류 평가 화면에 표절한 부분이 표시가 되고, 그 표절 내용이 보이는데도 0점 처리를 안 하려면 대학이나 평가자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겠죠.)
그 다음 그 자기소개서는 생활기록부와 함께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들에 의해 읽히고 평가 받습니다. 입학사정관은 지원학과(또는 유사학과)의 교수님, 학생 선발의 전문성을 가진 직원 선생님(전임 입학사정관)을 의미합니다. 교수를 포함한 모든 입학사정관들은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또 일부 대학의 경우 선생님의 추천서를 포함하는 서류 평가와 면접 평가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기 위한 상당히 심도있는 교육을 받습니다. 서류평가 교육에서는,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들의 의미,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보통 고등학교에서 하는 교과외 활동들에 관한 내용 등과 같은 일반적인 사항과 당연히 각 전형에서 뽑고자 하는 학생의 인재상, 각 인재상에 지원학생이 부합하는지를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에서 확인하는 법, 그리고 예년의 입학 관련 통계 (경쟁률, 평가 결과, 합격선, 등록률, 전형별로 입학한 학생들의 대학에서 성과, ...) 등을 배웁니다. 그리고 모의 서류 평가, 모의 면접 등을 통해 훈련도 합니다. 이 교육은 꽤 긴 시수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되어 있고, 오프라인 강의, 온라인 강의, 실습을 포함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은 인재상과 평가 잣대에 대한 비교적 고른 기준을 가지게 됩니다.
서류 평가에서 각 평가 요소의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는 각 대학의 입시요강에 전형별, 모집단위 별로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입시 요강을 잘 읽는 것은 어떤 학교, 어떤 전형에 원서를 쓰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어떤 전형에서는 교과 성적을 점수화하여 반영하지 않으며 (즉 다른 모든 요소를 고려한 정성 평가를 통해 점수를 정하며), 어떤 전형에서는 내신 등급을 점수화하여 반영합니다. 그 점수화 방법도 요강에 공개됩니다. 또 어떤 전형은 수시 입시 후에 진행되는 수능에서 일정 등급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합격이 되는 수능 최저기준 적용 방식도 있습니다.
교과 성적을 점수화하지 않는 경우에도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성적이 입학사정관에게 보이면 아무래도 성적이 서류 평가에 영향을 주겠습니다. (어떤 대학은 교과 성적을 서류평가를 하는 입학사정관이 아예 볼 수 없도록 시스템에서 막는다고도 합니다.) 특히 경쟁률이 높으면 다른 비교과 활동이나, 인재상 관점에서 비슷한 수준의 평가 점수를 받는 학생 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내신 성적이 입학사정관에게 보인다면 현실적으로는 더 영향을 주겠죠.
출신 고등학교에 따른 차이, 성별, 나이 등의 차이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모든 대학의 입시에서 유지하고 있는 '꽤나 당연한' 기본 정책입니다. 그런데 서류 평가할 때는 지원자의 출신 고등학교, 그리고 입학, 졸업년도로 미루어 나이도 눈치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별도 가끔은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고등학교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과과정, 비교과 프로그램, 대회, 동아리 정보는 학생 활동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서류평가 시스템에서 제공됩니다. 수식에 의한 출신 학교별 점수화를 하지는 않겠지만, 학교 이름이 보이고 그 학교에 대하여 입학사정관이 잘 알면, 심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입학사정관은 고등학교의 학교차를 반영하지 말라고 교육받으며, 또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면접 때는 소속을 가리는 블라인드 면접을 합니다. 수험생의 얼굴은 보이지만, 면접 때 평가자에게 제공되는 서류에서는 지원자의 학교를 확인할 수 없으며, 교복도 입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에서 어쩌다 학교가 암시되는 단어가 발견되는 수가 아주 가끔 있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자기소개서는 생활기록부와 함께 입학사정관들에 의해 평가됩니다. 생활기록부, 출신학교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기소개서를 읽을 때 생활기록부의 내용, 출신 학교가 제공하는 여러 기회들을 같이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생활기록부에 뭐를 기록할지 선생님에게 학생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 기회를 활용해서 더 정확한 자신이 생활기록부에도 남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1. 자기소개서에서 이야기하는 '배우고 느낀 점'의 의미
(이 섹션부터는 완전히 저의 개인적 관점입니다. 다른 입학사정관들의 생각도 비슷할 거라고 저 혼자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우선 자기소개서에서 쓰라고 하는 '배우고 느낀점'은 뭘까요?
자기소개서는 '경험'에 기반한 자기소개를 하는 글입니다. 여기에서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경험으로 체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부대 탈출 매뉴얼'을 읽어도 애인이 안 생기고, '수영 3주 완성' 책을 읽어도 수영은 못합니다. '배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소프트웨어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C 언어를 배웠다'라고 하면, '~~ C 언어 4주 완성'과 같은 책의 진도를 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C 언어를 이용하여 뭔가를 만들어보고 이제 더 어려운 다른 것도 배워가며 만들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많은 자기소개서에는 'C 언어는 어디까지 (예를 들면, 조건문, 배열, 포인터 등등) 공부했습니다.'와 유사한 문장이 자주 보이는데, 그 문장은 '난 수영 3주 완성 책을 자유형 장까지 읽었어요'라고 읽힙니다. 즉, '전 아직 프로그램을 짜본 적이 없어요', '아직 물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배웠다'는 것의 맞는 표현은 'C 언어로 ~~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봤습니다.', '수영장에서 배영으로 500m를 쉬지않고 갈 수 있습니다.' 라고 쓰는 것입니다. 정말 할 수 있어야 그렇게 쓸 수 있겠죠.
'느낀 점'은 작은 감정의 울림을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소개서에서 '느꼈다'는 것은 '내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 영화를 보고 정보보안이 중요함을 느꼈다.' 라고 쓰고 그래서 진로를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아마도 다른 직업이 돋보이는 영화를 보면 바로 진로를 바꿀 수 있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진로를 탐구했다고 보이지는 않겠죠. 그래서 '내가 달라졌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 영화를 보고 정보보안이 중요함을 느껴, ~~와 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는 ...' 이렇게 가야합니다.
대학 입시 전까지 '배우고 느낀 점'들이 모두 위 설명처럼 심오할 수는 없겠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줄거리가 있는 그런 경험은 잘해야 몇 건 있을 겁니다. '이전에는 못하던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배움', '나를 달라지게 한 어떤 경험'을 한 두 가지만 잘 써도 분량이 꽤 됩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의 글자 수가 1,000자 정도인 겁니다.
2. 자기소개서에서 보고 싶은 것
대학은 학교입니다. 대학은 또 교수들은 당연히 자기 학교, 자기 전공에 훌륭한 학생들이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훌륭한 학생은 대학과 각 전공의 인재상에 맞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훌륭하다는 것의 속내는 '알아서 잘 하는' 학생입니다. 대부분 대학교의 입시는 천재적인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과정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 천재적인 학생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입시는, 특히 학생부 종합전형 입시는 '열정이 있는 학생', '잘 배우는 학생', '성실한 학생', '전공을 즐기는 학생', 그리고 '인성이 좋은 학생'을 찾아내는 절차입니다. 이 인재상 각각을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A. 열정이 있는 학생 : '열정'은 뭔가에 대한 열열한 애정을 의미합니다. 소프트웨어 전공을 지원한다면 당연히 소프트웨어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죠. 위의 1장의 배우고 느낀점 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보고 감동한 것은 열정이 아닙니다. 열정이 있다면 뭐라도 찐하게 해봐야하는 것입니다. 열정은 나도 모르게 그 열정의 대상에 몰입하는 상태를 유발합니다. '열열한' 애정이 있는데 직접 해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소프트웨어는 대단한 준비가 없어도 컴퓨터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배워 바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열정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끝까지 가보게 됩니다. 끝까지 가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 것 같으면 일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어느 수준까지 완성하고 되돌아보고 다음 단계를 완성하고 또 뒤돌아보는 반복과 확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열정의 끝에는 진정성이 있는데, 그 진정성은 내가 문제를 해결한 과정과 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쓰게 하고, 그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위에 언급한 '찐하게', '끝까지' 가본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자기소개서를 보면 학교와 관련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경험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급식이나, 알림장, 교내 게시판, 시간표 등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만들고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개선할 사항을 찾아 수정하거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진정성의 단면인 것입니다.
B. 잘 배우는 학생 : 소프트웨어 영역의 경우, 아주 빠르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며, 그 새로운 기술은 이전 기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면 기초 이론을 잘 알아야 함은 물론 생산성 높은 도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언어와 기술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재미를 느끼면서 빠르게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향과 역량을 가진 학생이 대학에서 보는 훌륭한 학생입니다. 1장의 배우고 느낀 점의 의미<에 대한 설명에도 있듯이, 잘 배운다는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책 진도를 나가서 연습 문제를 잘 풀고, 모의고사를 잘 보게된 것은 배운 것이 아니라 공부한 것입니다. 잘 배웠다는 것은 스스로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 환경에 적용한 뒤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과정에서 어떤 배움이 일어났는지를 그 배움을 어떻게 달성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입니다. 즉, 경험을 바탕으로 '드디어 이걸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과정이 배운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많은 고등학생들이 이미 교과과정의 일부로, 또는 교과외 프로그램으로 의미 있는 소프트웨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게임이나 앱을 만들어 출시하여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고, 실제 고객이 있는 서비스를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준이 '엄청난' 또는 '보통 사람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천재적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극소수의 천재들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닙니다. 천재들은 그냥 알아서 잘하도록, 먼저 가도록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맘 편합니다. 많은 경우엔 천재가 아니라 어떤 '느낌 있는' 계기가 있어서 남들보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경험하고, 실제로 유용한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으로, 끝까지 해보고, 재미까지 느낀 것입니다. 아직 경험이 없는 학생들도 그런 '느낌 있는' 계기가 생기면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에 비슷한 수준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전공과 관련한 선행 경험은 그 깊이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현재의 전공 역량이 '잘 배우는' 역량보다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꽤 있어보이는 높은 수준의 경험이 아니라도, 또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험이 아니라도 스스로 입학 인재상 관점에서 '잘 배우는 학생'의 범주에 속한다는 증거는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문제를 해결해야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란 교과서나 참고서의 연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문제란 '쓸모 있는' 프로젝트, '호기심 가득한' 질문, '재미난' 어떤 활동, '우리 주변의' 사회 문제 등 어쩌면 답안지를 볼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 답을 스스로 어떤 방법으로 뭘 보면서 찾아 가는지가 그 배우는 과정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법에 관한 제 짧은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소프트웨어를 배우기는 왜 쉽지 않은지]도 도움이 될 겁니다.
C. 성실한 학생 : 성실함은 하나로 딱 정의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 성실해지고, 몰입을 하게됩니다. 그 재미있는 것이 성적과는 상관없거나, 다른 이에게는 전혀 유용한 어떤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국영수 공부에 불현듯 재미가 붙어 성적이 오르는 것도 성실함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실함이 입학 인재상에 중요한 이유는 열정이 있다고 치고, 어떤 역량에 도달하는 긴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동력 또는 끈기가 있어야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입니다.
성실함의 또 다른 측면은 개인이 아닌 팀 활동에서의 모습입니다. 모든 팀 활동에는 각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R&R, roles and responsibilities)이 따릅니다.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 노력하고 자기가 맡은 영역의 완성을 책임지는 모습도 성실함의 한 면입니다.
D. 전공을 즐기는 학생 : 이 영역은 전공과 관련하여 '재미'를 정말로 느꼈거나, 또는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즐기는'의 다른 의미는 '호기심 많은' 입니다. 이것 역시 경험에 기반을 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재미'가 느껴져야 하며, 대개 그 문제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문제이거나, 책 뒤에 나온 연습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정의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느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이전에 했던 문제 해결 경험이 전공(소프트웨어)과는 큰 관련없는 방식에 기반했었는데, 어떤 경위든 소프트웨어가 그 문제 해결 경험이 다른 차원의 재미로 발전될 거라는 명확한 확신이 생겨 소프트웨어로 다시 도전해보고 싶거나, 다음의 더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로 해결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즐기려면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또 호기심이 있어야 동기가 생겨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즉 소프트웨어에 대한 호기심의 원천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이 네가지(열정, 학습역량, 성실성, 호기심)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정의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고, 자랑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잘 기술하면 네가지 역량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E. 인성이 좋은 학생 : 이 부분은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적어도 서류에서 어떤 지원자의 인성이 나쁜 것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인성이라 할 때 생각나는 '선함', '정의로움' 그런 것들은 자기소개서에 없거나, 다 좋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모든 사람의 인성이 좋다고 믿고 싶습니다. 다만 소프트웨어 관련 직업의 관점에서 보면 '공감력', '다양성의 존중', '소통 역량' 이런 부분이 좀 더 강조되기는 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프트웨어로 다른 전공 영역에서 다루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많은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F. 굳이 자기소개서에서 보고 싶은 인재상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 '꿈을 이루고 있는 학생' 입니다. 꿈을 이루고 있으면 꿈이 동사형일 때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변호사나 의사, 착한 해커, 위인전에 나온 인물이 되는 것, 즉 꿈이 명사형이면 그 꿈을 꾸는 순간 아직 그런 직업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아픈 사람을 돕는 것,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어떤 위인이 행했던 그런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동사형 꿈은 지금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므로 그 꿈을 이미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꿈을 '지금' 이루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특히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꿈을 조금씩 이루고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3. 자기소개서에서 안 보고 싶은 것
자기소개서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위 인재상에 관한 내용을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 교재를 어디까지 공부했습니다. 그래서요? 안한 것보다는 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배우고 싶었구나 하는 열정의 아주 조그만 단초일 수도 있지만, 쉬운 거라도 뭘 만들어 봤다는 이야기를 써야하는 겁니다. 진도는 누구나 나갈 수 있습니다. 경험은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뭔가를 만들어 본 이야기는 만들어 본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 ~~를 하고 싶어서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요? 아마도 자기소개서의 90% 정도에는 동아리 만든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더로서의 자질에 관한 경험적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동아리 만든 것 역시 열정의 아주 조그만 단초일 뿐입니다. 스스로 만들지 않았더라도 동아리에서 뭘 했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더 큰 문제를 정의하고 팀을 이루어 해결하면서 배운 경험이 잘 기술되어야 합니다.
- 팀 활동 중의 갈등을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래서요? 원래 갈등은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그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심오한 배움이 일어났거나, '띠용'하는 뭔가가 내 인생이나 진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 의미가 있겠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하루에도 몇번씩 갈등하고 대화와 설득,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 어떤 책 또는 영화를 보고 이 분야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꿈이 그런 걸까요? 그런 단편적인 느낌에 따른 꿈은 변하기 쉽습니다. 그 책이나 영화를 보고 흥미가 생겨, 그 꿈이 의미하는 동사형인 행위를 직접 해보고 나서야 정말 이 분야가 내가 꿈을 이루면서 살 수 있는 영역이구나 해야하는 것입니다. 등반 영화를 보고 에베레스트 등반이 꿈이라면 당연히 가까운 낮은 산 먼저 올라가보고 좋으면 우리나라의 높은 산도 가봤어야 하는 거죠.
- ~~방법으로 공부를 해서 ~~ 과목 성적이 올랐습니다. 정말 올랐나요? 또 그 공부 방법이 소프트웨어 전공에서도 통할까요? 5등급 하던 성적이 어떤 방법을 썼더니 즉각 부동의 1등급으로 올랐다면 모르겠습니다. 지금 대부분 내신은 시간들여 공부하면 성적이 오릅니다. 약간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방법이 주어진 문제의 답을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라면 성적은 올라 다행이지만 위 인재상의 어떤 부분을 잘 설명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늘 오픈북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요양원에서의 봉사활동은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누구에게나 나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분들을 위한 봉사는 같은 울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중요한 활동의 계기가 되지 않고, 그저 인생의 다짐하게된 단편적인 느낌이라면 너무 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봉사가 나의 큰 부분이고 나를 잘 설명하는 확실한 뭔가가 아니라면 자기소개서에 쓰지 마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계속 하시면 됩니다. 봉사는 중요하니까요.
4. 학교에서 담당해줘야 하는 것
이 부분이 자기소개서나 학생생활기록부를 보며 늘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학생에겐 너무 중요한데 학교별 또는 선생님별 편차가 너무도 심합니다. 학생들의 진로를 돕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면 이 부분을 선생님들이 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학생들도 너무나 당연히 선생님에게 자기소개서를 리뷰해달라고, 생활기록부를 잘 써달라고 요청해야하고, 선생님들이 리뷰를 잘 해주시고, 잘 써주실 수 있도록 자신에 관한 자료를 더 드려야 합니다.
학교 정보도 더 잘 입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떤 교내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열리는지에 관한 설명도 더 필요합니다. 교내 수상 목록이 모든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생활기록부 기록에 좀 더 신경써서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리뷰하실 때, 더구나 선생님 추천서도 쓰셔야 한다면, 학생을 몇 번 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위 인재상들에 부합하는 면들을 찾아봐 주시고, , 리뷰도 여러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5. 면접에 가면
서류 평가에 통과하면 전형에 따라 면접을 하게됩니다. 전형에 따라 학교에 따라 면접도 가지가지라 어떤 면접은 문제를 주고 답하는 그냥 문제 풀이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건 자기소개서와 상관이 없고 많은 경우 예시 문제도 공개되므로, 그런 비슷한 문제로 예습을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팁이 없습니다.
(아마 다른 대학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지만) 필자의 학교에서는 자기소개서 기반 면접을 하면, 세 명의 교수 또는 전임 입학사정관인 면접관이 한 학생을 10분 정도 봅니다. 면접관에게는 (이름, 학교 등 모든) 개인 정보가 지워진 입학지원서와, 서류 평가 때 평가자들이 '면접 때 이런 질문을 해주세요'라고 적은 메모가 전달됩니다. 그 질문은 서류 평가를 할 때 미심쩍은 부분이거나, 반대로 더 잘했을 것 같은데 기술을 잘 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 확인해 보면 좋겠다고 질문들입니다. 그 질문은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합니다. 서류 평가자와 면접관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것이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으며 그냥 복불복입니다. 면접관이 여러 명 이므로 아마 적어도 한 명은 서류평가도 했을 거라고 추정하시면 됩니다. 서류를 보지 못한 또는 봤다해도 오래 전일 수 있기 때문에 면접 전에 면접관들에게는 서류를 볼 시간을 충분히 줍니다. 또 여러 명이 면접관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현장에 같이 하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지원자 입장에서는 묻지 않아줬으면 하는, 빈 구석을 찌르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교수들은 빈틈을 찾아 확인하고 비평하는 훈련을 엄청나게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두셔야 합니다. 하지만 면접의 분위기는 가능하면 화기애애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고,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면접이 끝나면 붙었구나 라는 느낌이 들도록, 또 면접 후에 이런 부분은 내가 좀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소프트웨어 전공은 다른 모든 전공에 비하여 짧은 면접 시간에도 불구하고 인재상의 여러 부분을 전공 관점에서 아주 잘 확인할 수 있는 전공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를 뽑는다면 10분 가지고는 말이 안되지만, 입학 전형에서는 시쳇말로 10분이면 앞에 앉은 지원자를 탈탈 털 수 있습니다. 모든 질문은 자기소개서 그리고 생활기록부에 있는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갑니다. 대개는 자기소개서에 기술된 경험(프로젝트, 활동)의 디테일, 즉 아주 구체적인 동기, 어쩌면 잘 기억나지 않는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한 과정, 그 과정에서 배운 것, 제대로 배웠는지를 깊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실제 경험하지 않은 일을 자기소개서에 쓰면 바로 탄로나게 됩니다. 자기소개서를 100번은 읽고 고치고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험한 내용을 잘 정리하는 와중에 실제 있었던 모든 것들이 기억나고 잘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면접 준비를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자기 소개를 아주 특이한 형식으로 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그 학교의 인재상에 왜 맞는지를 '잘' 우회적으로 이야기 하면 좋습니다. 또 언변이 좋은 친구들도 있는데,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보면 그게 그렇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면접은 입학인재상에 맞는지를 보면 꽤 훌륭한 도구이므로 자기소개서를 잘 쓰고, 거기 기술된 경험들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리마인드해서 오시면 됩니다.
면접은 인재상을 확인하는 도구인지라, 과거를 묻기도 하지만 앞으로 뭐 할 것이지도 당연히 묻습니다. 당장 지금하고 있는 일들, 수능이 끝나면 할 일, 대학에 들어가면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그것도 잘 정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이글이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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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은 의도적으로 조금 과격하게 쓰였습니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오류가 있거나,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면 댓글을 달아주시고, 제가 댓글의 취지에 동감이 되면 본문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ps. 대입 자기소개서에 관한 책도 무척 많습니다. 다 비슷한 내용이 써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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