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생성형 AI를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아예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걱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전면 금지"가 정말 최선일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더 나은 길이 보인다.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글과 다른 생각이 있으시다면 각자 걱정하는 범위에서 그 생각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교사의 관점이 아닌, 배운다는 학생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백만년동안 하지 않았는가? 배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AI가 다 해주면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초등 저학년은 글쓰기, 읽기, 셈하기의 기초를 쌓는 시기다. 이때 AI가 글을 대신 써주고 답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직접 머리를 쓰는 경험을 놓친다. 맞는 말이다. 맞춤법을 틀려가며 문장을 고치는 과정, 받아올림을 헷갈려하며 계산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배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AI 사용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AI에게 "숙제 대신 해줘"라고 하는 것과 "왜 하늘은 파란색이야?"라고 물어보고 "그럼 우주에서는 하늘이 무슨 색이야?"라고 이어서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활동이다. 전자는 문제가 되지만, 후자는 오히려 아이의 호기심을 키워주는 탐구 활동이다. 전면 금지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막아버린다.
"AI만 들여다보면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게 된다"
AI 때문에 아이들이 친구와 어울리지 않게 될 거라는 걱정도 있다. 화면만 바라보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스크린 타임에 대한 오래된 우려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반 친구가 힘든 일을 겪었다. 아이가 "힘내"라는 마음을 담아 위로 카드를 만들고 싶은데, 그림에 자신이 없다. 이때 AI로 예쁜 카드를 만들어 전해준다면? 여기서 "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알아차리고, 위로하고 싶다고 느끼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부 아이의 몫이다. AI는 그 마음을 좀 더 멋지게 포장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학급 친구 생일에 다 함께 축하 영상을 기획하면서 AI로 배경음악이나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AI가 관계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오히려 글씨나 그림이 서툰 아이도 자기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니, 참여의 문턱이 낮아지는 셈이다.
"AI는 답만 주잖아요, 아이들이 질문을 안 하게 됩니다"
이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종대왕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AI는 깔끔하게 답해준다. 궁금증이 해소되니 더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AI 대신 책을 읽혀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그런데 솔직히 묻자. 책을 읽는다고 자동으로 질문이 생기던가? 시험 범위만 훑으며 읽는 아이에게는 어떤 질문도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AI에게 "세종대왕은 왜 한글을 만들었어?"라고 물은 뒤 "그럼 그 전에는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썼어?"라고 계속 파고드는 아이도 있다.
결국 질문이 생기느냐 마느냐는 책이냐 AI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그 매체를 사용하느냐, 그리고 선생님이 어떤 활동을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e북이 나왔을 때 "그건 진짜 책이 아니다"라는 논쟁이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종이냐 화면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읽고 생각하는 경험이었다. AI도 같은 이야기다.
"AI는 연필이나 가위와는 차원이 다른 도구잖아요"
맞다. 연필은 내가 쓴 것을 종이에 옮겨줄 뿐이고, 가위는 내가 정한 선을 따라 잘라줄 뿐이다. 파워포인트도 내가 구성한 내용을 보기 좋게 배열해줄 뿐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스스로 내용을 만들어낸다. 이건 분명히 기존 도구와 다르다.
그런데 "다르다"는 사실이 곧 "쓰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계산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똑같은 논쟁이 있었다. "계산기는 연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계산을 대신 해주니까 안 된다." 결국 교육계가 내린 결론은 금지가 아니었다. 기초 연산을 먼저 익힌 뒤, 이후 단계에서 계산기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AI가 정말로 전례 없는 도구라면, 아이들이 그 도구의 성격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시급한 교육 과제 아닐까? 졸업 후에 어차피 마주칠 도구인데, 학교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는 것이 과연 아이를 보호하는 걸까?
그래서, "금지" 대신 뭘 해야 할까?
여기까지 살펴보면, 핵심은 분명해진다.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수업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가 진짜 질문이다.
어떤 활동에서는 AI를 쓰지 않는 것이 맞다. 생각하는 글쓰기 시간에는 아이가 직접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서툴러도 스스로 쓰는 과정이 곧 사고력 훈련이다. 그림 그리기 시간에는 손으로 직접 그려야 한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감각적 경험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에 AI가 끼어들 자리는 당연히 없다. 구구단을 외우고 받아올림을 연습하는 기초 셈하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어떤 활동에서는 AI가 큰 도움이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위로 카드 만들기, 축하 영상 기획, 탐구적 질문 이어가기 같은 활동이 그렇다. 조사 학습에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데 AI를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AI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물어보며 "AI가 항상 맞는 건 아니구나"를 체험하는 수업도 가능하다.
이런 구분은 "챗GPT는 되고 이미지 생성은 안 된다" 같은 도구별 규칙이 아니다. "아이가 직접 생각해야 하는 활동에서는 AI를 빼고, 아이의 표현이나 탐구를 넓혀주는 활동에서는 AI를 쓴다"는 원칙이다. 도구는 계속 바뀌지만, 이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솔직한 문제: 선생님들도 아직 잘 모른다
사실 이게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책은 선생님들이 수백 년간 수업에 써왔다. 어떤 책을 언제 어떻게 읽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 도구를 어떻게 수업에 녹여야 할지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다.
"준비가 안 됐으니 일단 조심하자"는 말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됐으니 전면 금지하자"는 다른 이야기다. 금지해 놓으면 준비할 이유도 사라진다. "어차피 금지했으니까"라며 교사 연수가 뒷전으로 밀린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아무 안내 없이 AI를 접하게 되고, 학교는 점점 뒤처진다.
필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교사가 준비되는 동안 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다. 지금 당장은 검증된 활동 모델을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제공하고, 선생님들이 하나씩 시도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쌓이는 경험을 모아서 가이드라인을 계속 다듬어가면 된다.
AI 기술은 빠르게 변한다. 오늘의 가이드라인이 내년에도 맞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은 한 번 만들고 끝나는 문서가 아니라, 기술 변화와 현장 경험에 따라 계속 고쳐나가는 문서여야 한다.
정리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생성형 AI를 아예 못 쓰게 하자는 주장에는 이해할 수 있는 걱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전면 금지는 너무 뭉뚱그린 대응이다. AI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해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그 구분 없이 모두 막아버리는 것은 아이에게서 배울 기회까지 빼앗는 셈이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AI를 쓸까 말까"가 아니다. "AI가 어디에나 있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고, 학교는 그 배움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다. 그 답은 금지가 아니라, 잘 만든 가이드라인과 선생님들에 대한 지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이드라인이 학생들이 학교에서 뭘 배워야 할까가 바뀔 때마다, 또 기술이 바뀔 때마다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학생도, 선생님도, 학교도, 사회도 모두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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