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여름인가 ?, 대학교 1학년 때 청계천에서 짝퉁 애플][ 컴퓨터를 샀을 때다. 그 때는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당시에 본체 25만원에 구입하고, 열심히 알바를 해서 플로피 디스크 각 30만원 씩 두개를 나중에 구입했다. (사진의 애플 로고는 최근, 동문회에서의 골통품 전시를 위하여,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아, 컬러 인쇄한 뒤, 양면 테이프로 붙인 것임)
이 짝퉁 애플][는 지금도 동작한다.
당시엔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프로그램 아르바이트 꺼리가 꽤 있었고 (프리랜서라고 하기엔 너무 열악한 계약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냥 아르바이트라고 하자) 그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이런저런 보드를 더 샀고, 지금도 관심이 많은, 임베디드 영역을 뭔가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보드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위 그림은 당시에 추가 구입하거나 만들었던 보드들로 제일 왼쪽을 시리얼포트 (자작), 중간은 80컬럼으로 화면을 늘려주는 VIDEX 카드 (이건 PCB, 부품을 따로따로 사서 땜질), 오른쪽 위는 플로피 디스크 인터페이스, 오른쪽 아래는 프린터 어댑터 이다.
이 밖에도, 이사하는 와중에 분실했지만, CP/M 운영체제를 돌리기 위한 Z80 CPU 보드 (CP/M 카드라고 불림)도 부품을사서 조립했고, 여러 하드웨어 제작 후 Test을 위한 로직 어낼라이저 보드, EPROM writer 보드, ROM emulator 보드, AD/DA 모드 등은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서 썼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그런 보드들이 필요했지만, 사려면 엄청난 돈이 들었기 때문에 가난했던 그때는 너무 쉽게 '그럼 만들지뭐' 하고 결정을 하고, 설계를 하고, 부품을 청계천가서 사서, 밤새워 땜질하고, 수정하고 해서 만들었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정말 그런 걸까지 써서 일을 해야하나를 100만년 동안 고민만 하다가 끝났을 거다.
애플 컴퓨터를 처음 사서 베이직 프로그램을 한두개 짜보고는 바로 어셈블러를 배웠다. 당시에 책이 한두권쯤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애플의 모니터롬의 어셈블러 소스가 수록되어 있었고, 그 소스가 유일한 교재였다. (82년엔 인터넷이 없었죠)
어셈블러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디스크도 없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종이에 짠 뒤, 손으로 표를 보고 변환하여 기계어 코드로 입력했다.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손셈블리'라고 한다 .또 이걸 며칠하다보면 기계어 코드를 다 외울 수 있게 된다. 해서 나 뿐만 아니라 몇몇 '선수'들은 당연히 처음부터 기계어로 프로그램이 가능해졌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대단한 것 같아 보였겠지만, 젊은 나이에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짜고 나면, 처음엔 디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카세트 테입에 삐리리 소리 형태로 메모리를 덤프하여 저장했다. 속도가 매우 느렸다. (프로그램 크기도 작았으므로, 별 문제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에 따라 소리가 달랐기 때문에, 자주 자용하는 프로그램은 소리를 듣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었다. (터미네이터 2에 보면 공중전화에서 휘파람으로 모뎀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이해가 되는 바이다.)
하여간, 모니터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애플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회로도 보면서 공부를 했었는데, 당시에 느꼈던 그 회로도의 아름다움은, 아이폰을 처음 본 느낌의 몇 배는 되었을 듯 하다. 빈틈없는 설계. 애플][의 회로도는 그 후 오랫동안 내가 하드웨어에 재미를 붙이고 먹고살게 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 회로를 설계한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악'이고 (그런 측면에서 나의 멘토는 아마도 스티브 잡스가 아니고 워즈니악이다.) 스티브 잡스는 회로이외의 나머지를 만들어 회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는 진정한 컴퓨터를 발명했다.
다음 사진이 나의 '짝퉁' 애플][의 메인보드 이다.
사진의 중간 금색 스티커가 붙은 위쪽의 칩이 모니터(+베이직)롬, 아래쪽 금딱지 칩은 CGR (Character Generator ROM, 폰트가 저장된 롬), 그 두 롬의 바로 오른쪽에 세로로 있는 좀 큰 칩이 6502 CPU이다. 메인 메모리는 왼쪽 두번째 열의 하얀 스티커붙은 두 칩부터 아래로 8개의 DRAM이며, 무려 64KByte 용량을 자랑한다.용량이 '너무 커서'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할 때는 64KByte의 상위 16KByte를 아마 RAM disk로 사용했던 것 같다. 보드의 제일 오른쪽 아래 RCA 코넥터가 연결된 부분은 모니터를 위한 디스플레이 회로이고, 그 바로 위(커넥터 슬롯 아래)는 카세트 녹음기 연결을 위한 모뎀 회로이다.
이 애플][ 컴퓨터는 86년도 쯤까지 처음에 재미로, 좀 뒤에는 아르바이트 용으로, 처음에 어셈블러와 베이직으로, CP/M 카드가 생긴 뒤로는 UCSD Pascal과 C 언어를 이용하여 나의 생활비(정확하게는 유흥비 + 약간의 책값 + 이런저런 부품 구입비)를 조달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85년 쯤이던가... 플로피 디스크 하나, 1MB 메모리의 IBM-PC/XT를 집에 들여놓은 뒤, 애플 ][는 어느 순간 시야에서 보이지 않고,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퇴물로 그냥 놓여 있다가, 이사하는 와중에 건져서 지금 연구실 구석에서 보자기에 담겨있다.
위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사실 스티브잡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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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의 애플][와 함께 스티브 워즈니악은 뉴스에서 사라지고 (얼마전 그의 자서전를 보았는데 눈물을 흘릴뻔 했다.)
스티브잡스는 NeXT, Pixar, 다시 애플에서 iSomething으로 가끔 나타나 내 주위를 크게 맴돌았다.
그는 살아있지 않은 것을 살아있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는 살아있지 않은 것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죽었다.
우린 그가 영원히 살아있다고 느끼고 열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