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나마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뭔가 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나의 초/중/고 시절의 암울함 때문이기도 하다.


[앵커브리핑] '저의 중학시절은 행복했습니다'  <-- 동영상 링크 (손석희)

"우리는 쓰레기예요"이제 갓 열일곱 언저리.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몇 분 계셨지만, 초등학교 때는 내가 봐도 대 놓고 봉투를 받는 여러 선생님들, 또 남녀 불문하고 엉덩이를 까고 때린 선생님, 중학교 때는  이유없이 애들을 줄세워 놓고 때리는 선생님, 후배에게 근거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3학년 학생회를 제지하지 않는 학교 당국, 고등학교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된 미션 스쿨에서 예배시간에 졸고있는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 질문했다고 의자를 던지는 선생님, 실험이 없는 과학에 불만이 없는 선생님, 학력고사 출제위원이신 선생님의 중간 기말 고사 문제를 통째로 외우게 하는 수업...

82년인 그 때의 사회는 그런 것이 문제라는 인식도 별로 없었지만, 난 그런 상황이 개선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3년만에 결혼할 때, 그런 상황은 역시나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사교육이 심해져  더 상황이 나빠졌다. 하지만 95년인 그때는 누구나 이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쯤에는 개선될 줄 알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말 훌륭한 사립 학교(@명지초등)를 다니는 동안에는 바깥의 나쁜 상황에도 우리 아이의 학교는 멋진 교장 선생님의 노력으로 내가 원하는 개선된 상황으로 통제(!)가 잘 되었다. 우리 아이의 중학교는 일부 선생님들의 진정성은 느껴졌지만, 그때는 법으로 금지된 선생님에 의한 폭력도 조금은 있었고, 뭔가를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참 예외적인 일부 선생님에 한정한 이야기였다. (그 상황 안에 있던 우리아이의 느낌은 다를 수도 있겠다. 예전에 우리가 이유없이 선생님에게 폭행을 당해도 그 때는 기분만 좀 나빴을 뿐,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 처럼). 아이가 기숙학교인 고등학교를 들어가서 가장 좋은 점을 물어보니 (당연히 집을 떠나 있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선생님이 질문을 받아주고 답도 해주고, 선생님의 질문이 학생들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고등학교의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 나는 꿈이 있었다. 공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과학자였지만, 내가 하던 건 공학이었다). 그래서 중고등 때는 청계천 부품 상가를 학교 등교하듯이 다녔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자주 사러가야 했다 :-) 대학교 가서는 더 미친듯이 뭘 만들었다. 사실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은 다들 마술처럼 뭔가에 꽂혔었다. 군부독재 타도를 하거나 무슨 동아리(서클) 활동을 심하게 하거나, 매일 술만 먹거나, 뭐 꿈 같은 것은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또 다들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미친듯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게 꿈을 이루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그게 다양하지가 않았다.

80년대 후반 6.29 이후 세상이 좀 좋아졌다. 그 때부터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뭔가에 꽂히지 않은 애들도 생기고, 대학의 (뭔가에 꽂히는) 문화에 반발하는 애들도 생기고, 정치적이지 않은 문화에도 이제 신경이 쓰는 애들도 생기고, 그래서 80년대 후반 학번들이 세상에 나올 때 쯤에 드디어 우리나라가 문화예술적으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언저리 학번들이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들 가운데도 성공적인 것이 많았다. 이런 다양성은 지금 중고등에 있지만 잘 프로모션 되지 않고 있다.

내 관찰에 따르면, 지금의 초중고 애들은 다음과 같은 부류로 나뉜다. (이 표현은 나뉘어졌다 라는 수동태가 더 적당하지만).

0. 극히 일부 뭐든지 잘하는 천재 소년 소녀들 (늘 이런 애들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내버려둬도 알아서 한다.
1. (스스로든, 강요되었던) 입시 공부를 성실히 하는데 크게 불편해하지 않은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 극히 일부
2. 사교육을 억지로 받고 있으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약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상위권을 유지하는 아이들
3. 사교육을 억지로 받고 있으나, 중상위 그룹에서 맴도는 아이들 (그래봤자 3등급 언저리 - 한반에의서 성적순으로 25% 이내 정도)
4. 사교육을 받지 않고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들 (비교적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5. 사교육을 억지로 받고 있으나, 그냥 왔가갔다 하는 (즉, 학원에서도 자고, 학교에서도 자는) 아이들
6. 사교육도 없고, 입시 공부는 예의상 최소한을 하면서, 자신 만의 뭔가를 하는 아이들
7. 사교육도 없고, 입시 공부도 제껴두고, 자신 만의 뭔가에 몰두하는 아이들
8.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이들 극히 일부

8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꽤 있을텐데.. 사실 그런 애들은 거의 없다. 아이돌 쫓아다니는 것도 6, 7번에 해당하고, 연애질에 빠져있는 것도 6, 7번에 해당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면 (그 가치를 지금 우리가 판단할 수 없기 떄문에) 다 소중하다. 대학에서 관찰한 학생들 가운데는 1번과 4번 그룹이 아주 우수해보인다. (사실 5,6,7,8이 더 유망할 가능성이 높으나 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오기가 쉽지않다.) 지금 세상에서 모든 학생들이 거의 불행한 범주에 있지만, 2, 3 정도가 가장 불행한 그룹으로 보이며, 5번은 늘 잠이라도 자니 꿈(literally)이라도 꾼다.

학교와 기성 세대가 가장 잘 못하는 것은, 위에서 80년대 후반 학번들의 대학생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애들이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 먼저 애들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뭐가 되고 싶은 것인지가 아니라)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중고등 때는, 에잇 조금만 버티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 껏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지금 애들은 (위 1,2,3,4,5번) 하고 싶은 걸 생각할 겨를도 별로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생각하고 찾아내는 방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적어도 뭐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말고) 물어봐 주자.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주자. 고등학교 때 배우는 것들이 세상의 완벽한 진리와 원리가 아닌 이상, 비교적 짧은 시간에 동기만 확보되면 나중이라도 금방 회복이 가능하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그걸 할 수 있게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교육 환경은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미안하다 내게는 수능을 없애고, 대학 입시를 그냥 학교에 맡기자는 거대한 것 이외에 답이 없다. 그냥 내 언저리에 있는 애들을 조금 케어할 방법을 찾고, 조금 실행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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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민석 hl1it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