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대학원을 다니다가, 랩의 모 선배가 창업(당시엔 스타트업이란 말이 없었다. 스타트업 대신 벤쳐라고 했다.)을 하신다길래 바로 같이 하자고 손을 들었다. 당시에는 아주 유망했던, 그 이름도 생생한 X-Terminal을 만드는 회사였다. 4명이 시작했는데, 사장님, 영업/마케팅,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렇게 였다. 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X-Terminal 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CPU + 메모리 + 이더넷 + 그래픽 카드, 이렇게 구성된 놈이고, 회사에서는 PC에 꽂아서 쓰는 그래픽 카드형 X-Server 카드와 LAN 카드, 나중에는 독립형 X-Terminal을 만들었고, 난 하드웨어 설계와 그 하드웨어를 구동하기 위한 부트로더, 그래픽 드라이버, TCP/IP 프로토콜 만드는 부분을 담당했다. 사실 이 회사를 끝으로 더 이상 하드웨어 개발을 업으로 하지는 않았다.


회사는 일이 짱 많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 회사가 용수철 만드는 공장의 한 부서로 시작했기 때문에, '공장' 스케줄대로 매일 7시에 출근해서, 작업복 입고, 애국가 부르고, 훈화 말씀 듣고, 안전 구호 외치고 업무를 개시했다. 공장은 3교대로 돌았지만, 공장 라인과 상관도 없었고 일도 완전 재미있어서 우리는 늘 새벽까지 일했다. 거의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바람에 택시비보다는 쌀 거라는 생각 하에 중고차를 사서 몰고 다녔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는 월급도 적었지만, 기름값도 용서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시의 기름값>


늘 새벽에 운전하고 잠을 별로 못 잔 탓에 사실 졸면서 운전할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살인 면허 수준이었는데, 실제 사고는 사소한 접촉사고 몇 번이 있었다. 꼭 길이 막혀 천천히 가다가 앞차가 서서 브레이크를 밟은 뒤 차가 설 때까지 그 짧은 순간에 졸아서 앞 차를 받는 사고였다.  다행이 빨리갈 때는 또 다른 내가 깨어나 운전을 한 것이 분명하다.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졸다가(사실 자다가) 깨어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가도로 위를 가고 있을 때다. 언제 한번은 깨어보니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으로 가고 있던 적도..


그리고, 오늘의 본론...


지금도 자주 그러는데, 당시에도 기름은 항상 불 들어올 때까지 타다가 만땅으로 넣었었다. 주유 경고등 들어온 뒤 보통 승용차는 50km를 가네, 80km를 가네 하는데, 일부러 재보지는 않았지만, 60km 이상은 분명히 갔던 것 같다. 지금까지 길에서 엔꼬가 난적은 평생 딱 한번이다. 1991년 뜨거웠던 여름, 효심 충만한 그때, 시골 다녀오시는 엄마를 서울역에서 집으로 모시고 온다고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내에서 엔꼬가 났다. 무려 광화문 네거리에서 차가 푸득거리더니 결국 엔진이 멎었다. 앗! 마음을 가다듬고, 기어를 중립으로 바꾸고 차가 가던 힘으로 간신히 광화문 우체국 옆 골목에 일단 세웠다. 다음은 휘발류 넣어야 하는데, 당시는 인왕산 호랑이가 빨간 담배줄까 파란 담배줄까 하던 시절이라, 보험회사의 긴급 출동 그런 거 없고, 휴대폰도 아직 없던 시절이라, 친애하는 어머니는 차에 그냥 계시라 하고, 휘발류를 구하러 갔다.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에 가자고 했는데, 안국동인가 남영동인가 주유소에 데려다 주었다.


주유소에서 차도 없이 '휘발류 주세요' 했더니 안 판단다. 차에만 넣는단다.


1991년 여름, 시절이 엄혹했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 3당 합당을 하여 지금의 자유한국당의 뿌리가 되는 민자당을 만들면서, 민주화 세력, 노동자를 높은 강도로 탄압했다. 고 노무현 대통형의 유명한 사진이 그때 사진이다.

<3당 합당, 1990>


1991년 4월에는 명지대 1학년 학생이던 강경대 열사가 경찰의 구타로 사망했고, 그해 5월말까지, 그 와중에 김지하라는 인간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신문에 기고할 만큼, 8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스스로 몸을 불살라 민주화를 외쳤다. 



< 강경대 열사 장례식, 그리고 그 때 이미 망가진 김지하>

 

그래서...


당시에는 아직도 학생삘 나던 (정말이다) 내게 휘발유를 팔리가 없었다.

엔꼬가 났다고, 노모가 홀로 더운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고 간신히 설득해서, 휘발류를 팔기로 하고, 당연히 어디서 샀는지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다. 문제는 휘발류를 어디에 받아갈까 였는데.. 휘발류 담을 통을 사오란다. 헐. 그 하얀 통을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거니와, 그걸 산다해도 냄새나는 허연 휘발류 통을 들고 택시타고 광화문까지 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주유소 옆의 롯데리아에 들어가 제일 큰, 킹 사이즈, 캐릭터 그려있는 콜라 컵(1.5리터는 되는)을 발견하고, 통만 팔으라고 했다. 머뭇거리더니, 콜라를 담아 팔아야 한다고, 콜라를 안 담아도 같은 값이라고 해서, 콜라 값을 내고 통만 사서, 다시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는데.. 음..1초도 안걸리고 채워짐. 기름이 콜라보다 훨씬 쌌다는.. (사실 콜라를 마시고 기름을 담았어도 차가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다) 또 도대체 차의 기름통은 얼마나 큰 건가?


마치 콜라가 가득 든 듯, 휘발류 냄새 폴폴나는 통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들고 택시를 잡아, 기사 아저씨에게 엄청난 눈총 세례를 받으면서, 광화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구멍이 잘 맞지 않는지라 1/3은 흘리면서 휘발류를 주유구에 붓고, 다시 그 주유소에 가서 제대로 주유를 한 뒤 집에 갔다는 슬픈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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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민석 hl1it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