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된 이야기

 

어찌하다가 무려 25년 전쯤, 명리학의 대가이신 박재완(陶溪, 朴在琓) 선생에게 사주를 볼 기회가 있었다. 박재완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1년 전 쯤, 아흔이 되신 그때까지 공부를 하고 계시던 대전 주택가 골목집에 불쑥 찾아가 나와 주변의 미래를 물었었다. 엄청나게 유명한 분이셨지만, 계신 곳은 정말 허름했다. 내 인생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냥 인생을 보는 관점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신 눈물 나는 고마움에, 뭔가 사례를 바랄 분은 전혀 아니셨지만, 곁에 계신 할머니께 지갑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드리고 나왔다. 얼마 후 그 분이 돌아가신 날, 9시 뉴스에 그 분의 자취가 나왔는데 나 같은 어리고, 천한 것을 만나주신 것에 한없이 감사했었다.

 

그 분이 내게 써주신, 좋은 이야기만 가득 씌여 있는, 내 미래 인생에 관한 싯구와 그날 해주신 말씀의 강한 느낌이 아직 남아 있는데, 핵심 메시지는 간단했다. '다 좋은데, 길게 보면 인생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좋게 보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특히나 '물리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는 사주와 상관없다. 그런 것 고민하면 인생이 불쌍해진다'고 하셨다. (명리학의 대가께서 힘주어 말씀하신 속뜻을 내 맘대로 이해하고 천박하게 표현해서 죄송하다.)

 

그 이후, 내게 약간의 굴곡이 있었지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인생에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 '재미'라는 것이 내 인생에 꽤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결과가 물론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희망적인 결과를 보는 건 당연하고 가는 길이 재미있어야 하는 거다. 꿈이 동사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꿈이 멋진 명사형이고 그걸 이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명사형 꿈을 갖는 순간부터 참 인생이 피곤해지고 실패하기 쉬운 인생으로 바뀐다.

 

2. 좀 된 이야기

 

학부 때부터 난 회사들과 일을 많이 했다. 좀 지나서부터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과 배우려고 하는 일을 구분해서 다른 사례를 받았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일엔 손을 대지 않았다. 컴퓨터 언저리 일들은 늘 재미도 있었고, 나의 시도들이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이미 알던 어떤 조그만 것에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문제는 내가 일을 했던 회사들 가운데 정말 대박으로 성공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망했거나 망한거나 다름없거나, 간신히 유지되는 수준이었다. 뭐 확률적으로 보면 그게 정상이다.

 

개발자, 또는 그냥 개인으로서 나는, 사업이 흥하던 망하던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굶지는 않을 운명이니까. 내가 뭘 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고, 내가 만든 회로나 코드를 담고 있는 물건 또는 소프트웨어 때문에 삶이 조금 더 편해졌다고 생각하거나 아~ 이런게 있어서 참 좋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혹시 제품에 포함된 내 흔적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고 느끼시는 사장님이 계시다면 지금 사과드리고 싶다.

 

하여간, 그러다가 회사들이 망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졌다. 망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아마도 망하는 회사에서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뼈저린 아픔으로 남기 때문에 공감이 가능할 것이지만,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회사가 돈을 벌지 못하는 데는 100만 가지의 이유가 있고, 각 이유에 대한 분석과 대책도 100만 가지씩 있다. 아마도 망하는 과정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사람이 개입된 부분이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다가 싸움이 난 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름을 망할 때쯤에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망하는 것을 어찌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돈이 안 벌리니까. 그래서, 망할 때는 망하더라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우리가 망한다는 것이 뭔지에 대한 인식을 시작할 때 또는 망할 조짐이 없을 때 미리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프로젝트가 망해도 회사가 남기 때문에 반성도 가능하고, 다음 번에는 더 잘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작은 회사가 첫 사업에서 망하면 구성원들끼리 감정이 상해 바로 흩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회고를 할 기회도 없고, 한탄과 비난해야 할 대상이 누군지 정하는 일이 남는다. 그래서 미리 '이렇게 되면 망하는 거야'를 정하고, 그 사안들을 나열해 두면 나중에 진짜 망할 때 인식의 차이가 없어져서 구성원 사이의 감정에 따른 아픔이 줄어든다. 이미 망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할까 싶겠지만, 또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망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인생이라는 것이 잠시라도 사람에 대한 아픔으로 보내기에는 아까운 것이기 때문에 즐겁지는 않더라도 아프지는 않게 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3. 최근 이야기

 

3-1. 최근 일의 발단

 

3년하고도 몇 달 전,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학 동창인데 살아있다는 것쯤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아마 25년쯤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뭘 같이 하자고 했다. 돈 버는 일은 아니고 학교를 만드는 일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믿을 만했다 (... 내 친구들은 모두 믿을 만하다) 하고자 하는 일의 진정성도 있었고, 이미 많은 선택과 고민을 한 뒤였다. 우선 질문을 했다. '학교에 돈을 대주는 회사가 언제쯤 망할 것 같나?'라고. 문제없다고 했다. 5년은 간다고 했다. 내가 봐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고, 1년 후에 보니 더 오래 갈 것 같은 좋은 조짐도 많이 보였다. 사실 그 회사가 망해도 새로운 학교라는 재미는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다. 얼마 후, 그 학교 이름이 NHN NEXT로 지어졌다.

 

몇 달 후, 학교를 준비하던 초기 구성원들이 서울 근교로 워크샵을 갔다. 각자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우리가 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고 했다. 우리 일이라는 것이 학교를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망한 것에 대한 판단은 학생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라고 학생들이 생각하면 학교는 망한 거다.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니 진짜 동의하였다고 믿고 있다.

 

학교를 한다는 것은 모든 사고의 중심에 학생을 놓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망함을 정의하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 해야만 했다. 교수나 직원을 채용할 때도, 여러 제도를 만들고 운영할 때도 그랬다. '학생'이란 단어를 늘 주어로 사용하려 했고,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존중하고, 우리가 약속하고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들을 진짜 줄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고, 평가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만들어 가능한 빨리 바꾸었다. 그 개선 과정도 역시 학생의 관점이 지배했다. 학기가 지나면서, 입학 전 예상했던 재미가 확보되지 않아 스스로 그만 둔 친구도 있고, 안타깝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의미 있는 역량 수준에 이르기 어려워, 바깥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학생들은 우리가 그만두게도 하였다. 늘 그렇듯이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학교도 그렇다. 그러나, 학교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우리의 판단 기준은 역시 망함을 정의하는 유일한 주체인 학생의 관점이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도 학생이 정하면 좋았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또 여유가 있는 다른 나라라 하더라도 이 산업에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스스로 느끼고 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방식은 폭 넓게포기하고, 학생들이 나중에 속하게 될 산업의 선수들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해달라고 맡겼다. 또 정기적으로 그 내용을 리뷰해서 학교와 학교 밖의 간극을 줄이려 했다. 뭘 배워야하는지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있는데, 그 부분은 약간 애매한 부분이었다. 교육이라는 행위 자체야 그냥 할 수 있는 것으로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정작 배우는 것은 학생이고 그 배움을 도와주는 방법은 경험이 거의 없거나, 책으로만 배운 교직원들에게는 생소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주어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잘 배우는 법을 설명도 하고, 학생들의 배움을 도와줄 방법을 학생들과 함께 설계하기도 하고, 교수가 이런 저런 방법을 고안해서 써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실험들의 성공 사례와 망한 사례를 같이 이야기하면서 서로 배워나갔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변한 모습과 그 변화에 교수들이 끼친 영향에 대하여 싸늘하게 평가했다. 그 평가를 수용하여, 교수도 학교도 더 좋은 방식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학생들도 아마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교육 품질에 대한 놀라운 개선이 모든 영역에서 있었다.

 

3-2. 그러다가,

 

한 분이 새로, 위에, 오셨다. 성공 경험으로 충만한 분이고 의욕도 넘쳤다. 좀 복잡해졌다.

 

- 학교에 처음 와보고 '돈지랄'이라고 말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천박함을.

- 학생에 대한 조그만 서비스를 '비용'이라고 말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비정함을.

- 교수를 '철밥통'이라고 말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트라우마를.

- 첫 회의에서 '소통'을 강조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대책이 없음을.

 

그랬다. 내 인생에서 정치가가 아닌 누군가를 이렇게 비난해본 경험이 없다.

 

Followership이란 단어를 여러 명이 이야기 했다. 리더가 추구했던 가치를 위해 노력해봤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아둔해서 그 분이 주장한 가치가 뭔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대답하고 싶다. 좀 더 적극적인 변명으로는 그분이 주장했던 가치들을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심하게 의심이 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내가 잘 이해 못한 가치보다 훨씬 중요하며, 확실하게 정의되어 사회에 공표했던 약속들, 원래 학교를 만들 때 돈을 낸 회사가 수용하고 구성원들 모두가 추구하던 가치들을 지키고, 몇 년 후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평가받는 일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학교 구성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신념이나 철학은 고사하고, 과연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지 의심이 되는 결정도 많았다. 또 학교를 떠나 한 조직에 속한 모든 개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개념도 없어보였다. 학교라고 부르지 말자고 했다. 교수라고 부르지도 말고, 심지어 학생도 다른 말이 없냐고 했다. 뭐 원래 이름 자체에는 우리도 처음부터 큰 관심이 없었다. 학생, 학교, 교수, 선생이라는 그 이름들이 가진 상징성이 내포한 의무감과 진정성이 중요했던 것이고, 다만 그 명칭을 대신할 만한 적당한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여간 더 이상 학생은 주어가 아니었고, 이전에는 거북했던 단어들이 회의에 자주 등장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언젠가부터는 학교가 처한 상황의 엄중함 한 켠에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인간'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3-3 망함

 

그런 변화의 점점 가속화되던 20147월 어느 날, 학생들의 게시판에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렇다. 초기의 정의에 따라 우리는 망한거다. 이번에 망한 이유는,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지만, 아마 조직이 망하는 흔한 이유 100만 가지 중의 소소한 하나일지도 모른다.

 

앞서, 망하는 과정에서 늘 사람이 개입되기 때문에 아프다고 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름을 망할 때쯤에서야 알게 되어서가 그 주된 이유라고 했다. 적어도 NHN NEXT의 원래 구성원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문제 인식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망하는 과정에서 그런 아픔은 없었다. 다만 학생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모두를 힘들게 했다. 하물며 아직도 학교의 중심인 학생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크게 죄송하고, 뭔가 더 똘똘한 방법을 찾지 못한 무능함을 반성한다.

 

결론적으로, 느즈막히 만난 '전혀 새로운, 한편으로는 불쌍한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가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기대했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또 그런 인간을 지근 거리에서 관찰하는 쏠쏠한 재미를 즐기기엔 내 인생이 아까웠다. 결국 내게는, 또 한 번의 '망한 경험'이 추가되었다.

 

4. 이제 와서 이야기

 

재작년 여름, ‘철밥통직장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길 때, 엄청나 만류와 걱정만 있을 뿐, 정작 '?' 라는 질문을 해주신 분은 없었다. 내심 '이렇게 재미있는 걸,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해 보겠냐'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그런 대답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전의 어떤 일보다 선택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쉬움이 많지만, 적어도 망하기 전까지는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마 NHN NEXT에서 같이 했던 모든 분들이 그렇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최선을 다해 온전히 학생들과 사회에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었냐고 물으신다면, 모든 교직원이 100% 이상 노력하고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도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아마 2년의 학업을 마치고 새로운 조직에 속하게 된 학생들이, 우리가 했던 일들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이었는지를 지금 증명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 뭔가 아름답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이야기 했을 때, 나뿐만 아니라 우리 구성원들의 가족이나 주변에서 들려온 가장 흔한 말은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였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부분이 내가 가장 마음 아쉬운 부분이다. ‘신뢰에 대한 의심역시나 하는 확신으로 바뀐 것이다. 대기업이 뭔가 착한 일을 시작할 때 앞으로 ?’라는 대한 질문을 훨씬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으...


*

 

ps. 내 기준으로는 일단 망했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가열찬 노력으로, 학교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이런 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구성원들이 떠난 상태에서 바쁘게 2015년의 1학기도 준비되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학교가 만들어질 때 했던 사회적 약속을 온전히 지킬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들의 노력을 지지해주시기 바란다. 또 더 좋은 모습으로 NHN NEXT가 설 수 있게 응원과 압력을 넣어주시기 바란다.



20152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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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민석 hl1i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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