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원 (또는 단독) 주택을 예쁘게 지은 포스팅을 종종 본다. 하나도 안 부럽다. 오히려 걱정된다. 무려 70년대에 청운의 꿈을 품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감탄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꽤 현대적인 단독주택을 지어 나도 20년 정도를 살고, 이후에 두 분은 10여 년 더 사시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누군가 100% 관리를 해주고 그 (클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할 수도 있지 않는다면, 결론적으로 평생 주택으로서 단독 주택은 아니다. 힘좋고 시간 많을 때 (이런 게 많은 사람들에겐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 때 집으로는 OK다. 그래서 떠날 계획을 미리 잘 잡아두어야 한다. 질질 끌다가 개고생 한다. 아파트가 답이다. 같은 수준의 아파트가 훨씬 비싼 이유가 다 있다.
그래도 혹시 단독 주택을 원하신다면..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들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겠다.
1. 잔디.. 잊어버리자. 창문 열면 푸른 초원,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집이 수천평 되면 모를까.. 아니다. 잔디는 잘 죽거나, 일단 자리 잡아 잘 자라기 시작하면 진짜 너무 잘 자란다. 잔디의 친구 잡초는 더 잘 자란다. 집이 엄청 넓으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동 기계도 쓰고, 더 넓으면 양 두 마리 정도 키워주면 되겠지만, 늘 딱 애매한 작은 크기라 (잔디 깎는 가위를 이용하는) 수동으로 해야 하는데, 첫날 딱 해보고는 '멋지고 할 만한데?'라고 생각이 들뿐 두세 번 지나면 잔디가 미워진다. 힘들고 며칠 뒤면 깎은 표도 안 난다. :: 그래서 결론 :: 잔디 대신 자갈을 깔자. 그 둥근 자갈 말고 고동색 작은 돌 그런 거 정도..
2. 텃밭.. 잊어버리자. 연둣빛 키 작은 채소들, 아담하게 자라서 고기 구워 먹을 때 쌈 채소로 쓰고 샐러드 만들어 먹고, 허브 올리고..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먹을만한 거 만들려면 완전 신경 많이 써야 한다. 심어서 가끔 물 주면 될 것 같지? 절대 저 혼자 안 자란다. 벌레도 짱 많이 생긴다. 내가 먹기 전에 벌레가 다 먹고 먹을만한 거 건지기 힘들다. 혹시 잘되도 문제다. 너무 많이 생기는데 처음엔 옆집 순이네 영철이네 나누지만, 나중에 나눠주기도 힘들다. :: 그래서 결론 :: 채소는 사 먹자. 혹시 정말로 원하신다면 아담한 연둣빛.. 그런 건 잊어버리자. 깻잎 정도 좋다. 이쁘지 않지만 내버려두어도 그럭저럭 자라고, 실패해도 아쉽지 않다. 정말 최소한의 관리로 가능하다. 그리고 대파 몇 뿌리 꽂아두는 정도.. 잘 생각해보자, 우리에겐 텃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큰 상자 하나면 된다.
3. 과실수.. 잊어버리자. 마당에 사과, 감, 모과 열리면 일단 엄청 있어 보이고, 그거 따서 먹고 나눠주고 차도 만들고 쨈도 만들고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이미 큰 나무를 사다 심으면 한두해 뒤에 결과가 있지만, 작은 나무가 자라 쓸만하게 열릴 때까지는 정말 영겁의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과일은 한철이라는 거다. 한 철하면 가을 내내 이런 거 생각하겠지만, 진짜 과일의 한 철은 사실 한두 주이고, 선선해지고 눈이 쌓이는 겨울까지 그 과실 수의 이파리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기~~인 한철이다. 감 하나에 이파리 하나 이러면 좋겠지만, 감 하나에 이파리가 1kg는 된다. 누군가 쓸어야 한다. 낙엽? 그건 적당히 있다가 남들이 쓸어줄 때 '낙엽'이고 내가 쓸어야 하면 그냥 쓰레기다. :: 그래서 결론 :: 과일은 사 먹자. 혹시 정말로 나무를 원하신다면 이파리 잘 안 떨어지고 1년에 한 번 정도 손봐줘도 티 잘 안나는 침엽수, 키 작은 정원수, 죽어도 안 죽은척하고 그대로인 선인장 그 정도가 답이다.
4. 계단 있는 2층 집.. 잊어버리자. 무슨 저택의 휘감아 올라가는 계단 그런 거 생각하고 있겠지? 무슨 궁이나 성이라면 모를까.. 아니다. 집안이 예쁘려면 우아한 모양의 계단이 한 몫하는 건 맞는데, 지하철에서도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 타는 주제에 계단? 오르내리기 생각보다 번거롭다. 2층을 창고/다락으로만 이용해서 1년에 한두 번 올라갈 때 사용하는 거 아니면 계단이 있는 2층 집은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고도 많이 난다. 뭔가 들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어쩌다 미끄러워서. 어른 아이 할 거 없다. 보통은 계단을 넓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짐 옮기기도 짱 불편하다. :: 그래서 결론 :: 집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둘 거 아니면 2층 집 잊어버리고 집은 단층으로 짓는 거다.
5. 멋진 테라스.. 잊어버리자. 만들기는 해도 '멋진' 이 장면은 기대하지 말자. 우리나라에 정말 외딴곳 아니면 자연만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한 여름 아니고, 늦가을부터 이른 봄 아니고, .. 비오는날 아니고, 테라스를 이용할 수 있는 날씨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테라스에서 바베큐 파티.. 음. 정말 외딴 곳 아니면 완전 민폐다. 잘해야 일년에 한두번 이다. 그냥 야외 테이블 있는 고깃집 가자. 집이 완전 넓으면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테라스에 잘 안 쓰는 짐이 놓이기 시작한다. '안' 예쁘다. 테라스 바닥도 심한 관리 대상이다. :: 그래서 결론 :: 큰 테라스 비추다.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만들자. 정말로.. 경치가 그나마 좋으면 아주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놓을 정도 자리만 만들자.
6. 포근한 우리 집.. 이건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단열과 방수, 소음 차단 등은 건축의 기본인데, 이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재료도 재료지만 시공 과정이 더 문제다. 100% 정직원만으로 설계-시공까지 하는 회사가 없다. 다 하청에 재하청이고 사장님도 처음 보는 일용직들 일하러 오는 경우, 말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설계야 다 제대로 겠지만, 매의 눈으로 시공의 에브리 디테일을 감독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작업하는 분이 전문적 훈련을 받은 뒤 실제 시공한 경험도 많아야 하고, 공사 당일 기분도 좋아야 하고, 공사 기간 동안 날씨도 좋아야 하고, 재료도 좋은 걸 선택해야 하지만 모든 재료가 불량 없이 일정에 맞춰 들어와야 하고, 잘못 시공된 흔적이 있을 때 거침없이 재시공할 마인드들을 에브리바디 갖춰야 하고, 끝도 없다. 또 윗집 아랫집이 이미 난방을 하고 있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 주택은 모든 구석을 내가 덥혀야 한다. 모든 구석.. 상시 난방하기 아까운 모든 벽 닿은 창고, 펜트리, 보조 화장실, 외부와 연결되는 애매한 공간들.. 한 겨울엔 다 얼음장 된다. :: 그래서 결론 :: 집 짓는 거 아니다.
7. 기타 등등.. 잘 준비된 주택 단지 (즉 수십 채의 단독 주택을 한꺼번에 짓고, 기본적인 인프라 관리도 공동으로 하는 곳) 말고 완전 단독 주택이라면... 비 많이 올 때, 눈 많이 내릴 때, 태풍 불 때, 한파가 몰아칠 때 이거 장난 아니다. 날 좋고 우아한 분위기에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 넘치고, 새고, 미끄러지고, 넘어가고, 얼고, 터진다. 또 평생 갈 것 같은 많은 물건들이 생각보다 빨리 망가진다. 그런데 예쁜 집 짓느라 규격품이 아닌 사제, 특이한, 주문형, 귀한, 외국산 물건들을 쓰는 경우도 많고, 망가진 물건들에 대한 접근성/작업성이 꽝인 경우가 많아서 수리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또 아파트면 누군가 또는 공동으로 (즉, 관리비로) 해결되는 많은 것들이 내 일로 돌아온다. 요즘엔 좀 쉬워진 것들이 많지만, 쓰레기, 정화조, 냉난방 방법, 집과 외부의 경계 (담, 문), 방범, 주차, 택배, 인터넷, 전화, 전기, TV 안테나, 이런 모든 것이 '나 만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결론 : 집 짓는 거 아니다. 아파트가 답이다. 우리 부모님도 30년 이상 사시던 단독주택을 포기하고 아파트로 옮기신 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하셨다. 어른 말씀 틀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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