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용적으로 CES 전시내용과는 상관없는 글과 진짜 CES 전시 내용에 관한 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 CES의 주체들
(나) CES 2025 삐딱한 후기
(가) CES의 주체들
CES나 다른 전시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보자. CES를 포함하는 모든 전시회는 네 축의 주체가 있다.
1. 첫 번째 축은 전시를 하는 업체
2. 두 번째 축은 관객
3. 세 번째 축은 전시를 평가하는 업체
4. 네 번째 축은 전시회로 수익을 얻는 '업체'
첫번째 축의 A,B,C,D에는 큰 회사들이, E,F,G에는 중소기업과 일부 스타트업이 속하고, 그리고 '뭐지?'하는 회사인 H,I,J가 있다.
1.A 정말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고 확실한 실제 실행할 로드맵을 보여주는 컨셉이라도 명확하게 물건으로 보여주는 회사
1.B 정말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고 싶지만 확신이 없어 실제 실행할 로드맵은 없이 어설픈 컨셉을 말로 때우는 회사
1.C 혁신 주도는 못할 것 같고, 이미 1,2,3년 전에 1.A 회사들이 주장한 것들을 양산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나오는 회사
1.D 이도저도 아닌 회사, 혁신을 한다고 했으나 이번엔 말로 때울 만한 것도 없어, 망하지는 않았다는 것만 알려주러 나온 회사
1.E 매우 큰 시장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시장에 나름 혁신적인 제품을 완성 또는 곧 팔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는 회사
1.F 이미 양산을 하고 있는 제품을 전시하고 글로벌 고객 한 둘 정도라도 전시회에서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회사
1.G 자국내에서는 좀 되는 제품을 전시하고, 외국 사람 또 바라기는 바이어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하자고 나온 회사
1.H 사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회사에 자금 지원을 해준 기관에서 나가라고 하거나 비용이 안 들어 whynot 하면서 그냥 나온 회사
1.G 해외 마케팅에는 1도 관심이 없으나 라스베가스에 놀러 가기 위한 기획으로 나온 회사
1.H 회장님이 CES 가신다니까 예의상 우리회사 부스도 만들어야 해서 나온 회사
두 번째 축인 관객은 전시회에 참관하는 진정성에 따라 나뉜다. 겹치는 역할도 있고 일부는 3번째 축 소속인 경우도 있다.
2.A 어떤 혁신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고, 질문하고 답을 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2.B 어떤 혁신이 있는지 트렌드가 뭔지 근처에서 보고 있어 보이는 보고서나 기사를 써야 하는 사람
2.C 직책상 CES 한번 안가봤다고 하기엔 뭔가 없어 보일 것 같고 조금은 궁금하기도 해서 온 사람
2.D 높은 분(예 2.C)들이 오시는데 '이게 중요해요'라고 전시 주관에서 주장한 걸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고 설명해야 하는 사람
2.E 전시에 나온 업체와의 비지니스 미팅을 기왕이면 CES에서 하기로 해서 참가한 사람.
2.F CES 전시에 나온 물건들을 보고 협력을 하거나 소싱해서 판매를 할까 해보는 사람
2.G 라스베가스에서 한다니 열심히 출장 계획서를 쓴 뒤에 당첨되어 관광 겸 온 사람
2.H 정부의 무슨 사업을 하는 학교나 기관에서 지원해 준다니 지원해서 모집된 단체 참관단
2.I 학생이나 기관에서 단체로 참가하는데 인솔자가 필요해서 그냥 가이드처럼 따라온 사람
세 번째 축은 전시회를 이모저모로 분석해서 분야별로 기술 (그래서 투자)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는 업체들
3.A 기술/업계 트렌드를 분석하고 기술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가끔은 예측까지 하는 전문 미디어
3.B 기술 업체 트렌드에 따라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투자의 방향성을 정하는 증권사 및 투자자문사
3.C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자시의 운영 관점 혁신을 위해 어떤 기술이나 방향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자문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 회사
네 번째 축. 이 축에 속한 그룹이 대체로 전시회의 단기적이지만, 확실하고 진정한 승자이다.
4.A CES를 주관하는 회사인 CTA
4.B 전시회에 참가하는 업체에 부스 시설, 장비 렌트, 케이터링 등을 제공하는 업체
4.C 전시회 참관단을 모집해서 항공, 호텔, 이동, 부수적 관광 등을 제공하는 (관광) 회사
4.D 라스베가스 그 자체
이번 전시회에 전시를 위해 참가했거나, 참관을 한 사람들은 위 분류에 어디에 속해있었는지를 스스로 알 거다. 꼭 CES가 아니라도 전시회에 참여를 한다면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뭔가 이로운 방향으로 귀한 시간과 자기 돈이던 회사 돈이던 국민이 낸 세금이던 쓰도록 하자.
(나) CES 2025 삐딱한 후기
미래와 연동된 인사이트가 우아하게 담긴 후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기술 트렌드 전문가 님들의 페이스북, 블로그 글을 읽어보면 된다. 또 증권사나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가 해마다 '고객용' 딱지를 붙이고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개 증권사의 (잠재) 고객이시므로 별로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다. 증권사에 돈을 맡기고 있다면 달라고 하면 순순히 내준다. 컨설팅 회사 보고서는 전체는 아니지만 (꽤 잘 정리된) 요약본 정도가 해마나 시중에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조금 기다리시면 몇 개는 보실 수 있을 거다. 몇 해 전부터는 IT/기술 전문 미디어들이 두꺼운 수백만 원 정도의 '유료' 보고서를 매우 높은 품질로 만들어 판매도 한다. 그 보고서 가격이 출장비보다 훨씬 싸다. 그거 보시면 현지에 편도 10시간 이상의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거의 없다. 정말이다.
CTA는 미래를 비추고 세계가 가진 큰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들을 연결하고 드러내기 위해 CES를 해마다 개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정해진 해마다의 주제를 엄청나게 홍보하고, 회사들의 이야기를 해마다의 주제에 잘 끼워 맞추는 놀라운 일을 한다. 해서 새 세상이 금방 열릴 거 같지만, 늘 많은 과장이 있었고, 그 예측이 항상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시에 출품한 업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 주장한 미래 시장도 언제나 열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남들이 하니 뒤쳐진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장했는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수 년 전의 3D-TV 같은 거다.
가전이라는 범주의 큰 관점에서 이번 CES에서 느낀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중국이 이제 IT 기술에 있어 Follower 위치에 있는 마지막 해가 될 거라는 것이다. 이전에 언젠가 LG나 삼성이 그랬던 것 처럼. 이제 시장에서 접근 가능한 제품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양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술 자체와 만듦새, UX 관점 모두에서 중국 메이저 회사들의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번에 LG나 삼성이 차별화된 혁신적인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적어도 가전 관점에서는 K-가전이 먼저 미래에 도달할 거라는 기대는 이제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만, 부품도 아주 많은 로봇 청소기 영역에서는 이미 중국의 기술은 품질/기능 면에서 넘사벽이다.)
AI 분야에서는 언론에 여러 혁신적이라고 주장하는 물건들이 있었으나, 그닥 감동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대개는 이전에 있었던 응용들을 '조금' 더 잘하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CES 이전, 최근에 이루어진, 즉 이미 알고 있던, AI 분야의 놀라운 발전을 전혀 새롭지는 않은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중간 단계에 있다고, AI의 일상화라는 표현으로 약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몰랐지? AI로 이런 걸 할 수 있어' 보다는 'AI로 더 잘할 수 있어' 정도가 대부분이었다는 말이다. 그나마 '이런 걸 할 수 있어' 류의 완성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뭐가 될지 모르지만 AI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시기가 올 것은 확실한데 그게 뭔지 아직 모르거나, 누군가 알고 있는데 아직 드러지내지 않고 있다는 거다. 새로운 시장으로 비교적 잘 예측되는 한 가지는 (사람처럼 생긴) 로봇인데, 이번 전시회에서 로봇은 핵심 주제가 아니었기도 했지만, 컨셉이 아닌 진짜를 유튜브에서 보던 것 이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냥 진짜 있기는 있어 느낌까지다.
대신 AI 영역에서 청바지 장사는 매우 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는 이제 반드시 필요한 기술요소이기 때문에. Nvidia는 말할 것도 없고 on-device AI, edge 에서의 AI를 위한 AI 하드웨어 업체들이 매우 많았다. AI로 이전에 하던 업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도구도 많이 나왔다. 이 청바지 영역에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들도 매우 많아서 AI가 이전에 있던 많은 제품, 서비스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보인다.
모빌리티.. ''자율 주행' 자체는 이제 약간 논외로 된 것 같다. 필요한 만큼의 자율 주행은 이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이 모두에게 있는 것 같고, 그걸 싸게 만드는 방법(즉, 자율 주행에 필요한 부품)과 자율 주행을 즐기기 위한 방법에 여러 벤더들이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전기 이야기지만 수소 이야기도 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모든 전시회에는 거창하게 포장되는 ''혁신'과는 상관없이 소소한 뭔가를 들고 나온 보석같은 회사들이 많이 있다. 난 전시회에 '구경'갈 때 2.D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술적으로 또는 전시라는 행위 관점에서 그 보석 같은 회사들을 찾는 재미를 느끼려고 노력한다. 전시회가 주장하는 거대한 트렌드는 미리 뉴스를 보고 알게 되며, 그게 얼마나 현실감 있게 느끼는지를 확인할 뿐이다.
*
ps 1. 관람 후기의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 계실 거다. 또 워낙 많은 업체들이 난무한 CES에서 내가 자세히 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거다. 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느낀 거다.
ps 2. 내년에도 가야할까? 예측이 안되지만, 일로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안 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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